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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방에 놓여진 것들

홍이지 (전시기획자)

하얀 벽면, 조명, 채도가 낮은 어두운 바닥, 지킴이 그리고 작품과 관객들로 채워진 전시 공간이 갖는 전형성이 있다. 이러한 전시장의 구조와 질서는 공간의 호흡과 감정을 자아내고 때로는 어떠한 착각과 편견을 만들기도 한다. 2003년 처음으로 베니스 비엔날레에 방문했을 당시, 전시장 안의 모든 것이 멋지고 그럴싸해 보였다. 그리고 전시 공간에 놓인 소화기가 기성품이기에는 지나치게 아름답다는 생각에, 이것이 작품인지 실제 소화기인지를 파악하기 위해 캡션을 찾고 조명의 위치를 살피던 기억이 있다. 그 이후로도 종종 이러한 순간들을 마주한다. 전시 공간에는 보이지 않는 위계와 암묵적인 매뉴얼이 존재한다. 작품을 함부로 손대지 않으며, 큰소리로 통화하거나 다른 사람의 관람을 방해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 또한 이 공간 안에서는 새로운 해석과 의미가 부여되고 평범한 행위와 본래의 의미에 새로운 모순적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하얀 입방체의 존재와 의미에 대한 도전과 질문은 계속되어 왔다. 


가브리엘 오로즈코(Gabriel Orozco)는 미술관에서 보안상의 이유로 통제선을 설치하기를 요구한 것에 대해 가짜 경찰을 퍼포머로 고용하여 관람객이 선을 넘을 때마다 호루라기를 불며 가까이 가지 말라는 신호를 전달하는 작업을 선보였다. 이는 오로즈코가 전시장의 통제와 비가시적인 위계를 가시화함으로써 관객과 작품 간의 관계성에 관해 전시장이라는 상태와 태도에 관한 작품이다. 또한 1994년 뉴욕의 마리안 굿맨 갤러리에서 개최한 그의 미국 첫 개인전에서는 요거트 뚜껑 4개를 4개의 흰 벽에 설치한 작업 <요거트 캡>을 선보였는데 이 작품은 요거트 뚜껑의 의미와 생김에 대한 것이 아닌 화이트 큐브에 들어오는 관객들의 기대와 실제 사이의 심리적 간극에 관한 것이었다. 그보다 앞서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선보였던 <빈 신발 상자> 역시, 자신이 가지고 있던 기성품이 전시장 안으로 들어왔을 때의 역설적 상황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오로즈코는 현실에서 익숙했던 것들이 전시장이라는 공간에서 새롭게 재해석되고 미적 가치를 취득하게 되는 역설적 상황의 아이러니를 드러내고자 하였다. 그런가 하면 ‘뉴욕 첼시에 위치한 갤러리’라는 상징성과 운영자의 대표성을 이용해 미술계의 네트워크와 시스템을 실험해보고자 존재했던 ‘롱 갤러리(Wrong Gallery)’의 경우, 마시밀리아노 지오니가 공동 설립하여 비판적 담론의 창구로 활용한 바 있다. 갤러리의 전시나 작품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롱 갤러리는 대문만 존재했을 뿐 내부에서 아무도 근무한 적도 없으며 공간으로 운영된 적이 없다) ‘잘못된 갤러리’라는 일종의 농담이 담긴 ‘공공 미술’과도 같은 이 공간의 대문은 2005년 영국 테이트 모던 미술관의 소장품이 되면서 갤러리가 갖는 상징성과 그 이면에 존재하는 가치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구수현은 지난 10년간 미술 현장에 있었다. 그는 갤러리 지킴이, 디자이너, 도슨트, 설치보조 그리고 어시스턴트 큐레이터이자 작가로 미술 현장을 경험하면서 미술의 구조와 시스템에 관하여 고민해왔다. 2016년 구수현의 두 번째 개인전 <컬렉터의 비밀창고>에서 그는 ‘컬렉터’라는 구체적인 설정을 제안하고 관람객이 가상의 존재 이면을 찾는 과정을 통해 화이트 큐브를 벗어난 일련의 작품을 둘러싼 익숙한 보편성에 대해 다시금 질문을 던져보고자 하였다. 프로젝트 <관람 시간>의 경우, 보다 직접적으로 전시 공간 안에서 작품의 보호를 위해 존재하지만, 존재감이 드러나지 않는 ‘지킴이’라는 문화예술계의 직업을 통해 예술과 노동의 관계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이렇듯 구수현은 일련의 실험과 관찰을 통해 바깥세상과 단절된 전시장의 이데올로기가 자신의 삶과 연계되는 순간적 인지의 찰나에 주목하였다.  


그리고 작가는 <오늘날의 하얀 방을 그토록 색다르고, 멋지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전시를 통해 이러한 제도화된 공간을 이루고 있는 가시적인 요소들의 조형적 가치를 묻고, 비가시적인 전시 공간이라는 헤게모니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대해 질문한다. 또한 그는 전시장에서 보여지는 움직임, 냄새를 비롯하여 전시장으로 작동되기 위해 설정된 필수 요소들을 뒤틀어, 여느 전시장에서의 감상을 통한 심미적인 비평을 도출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예술에 대한 고정관념에 도전하고 작품을 둘러싼 신화적인 허상과 관념들에 대해 우리의 기대감과 익숙함에 대한 전복을 시도하였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그동안 작업한 미발표 신작을 보여주는 전시라기보다 그의 생각과 질문을 물리적 공간에 펼쳐낸 상황적 연출에 가까웠다. 라는 전시의 제목 역시 리처드 해밀턴의 작품 제목에서 차용한 것으로, 콜라주 기법으로 배치된 대량생산품들의 배치를 통해 당시 중산층의 대표성과 시대적 상징성을 드러냈다. 구수현의 경우, 화면이 아닌 실제 물리적인 공간인 갤러리 공간이라는 특정적 상황을 통해 비가시적인 이데올로기와 정치적 담론이 내재된 화이트 큐브의 아이러니를 드러내고자 하였다. 또한 작가는 작업실에서 제작된 작품의 결과물을 전시하는 것이 아닌 ‘포스트 스튜디오 (Post Studio)’ 작업의 연장 선상에서 작업실을 벗어나 전시장의 특정적 상황과 미장센을 가시화함으로써 전시장 자체를 예술 작품을 둘러싼 동시대의 취향과 스타일에 관한 실험의 장으로 활용하였다.


<매직 센트_오 다흐 꽁똥포헝 (Magic Scent_Eau d’Art Contemporain)>(2018)는 조향사를 섭외하여 유화 냄새, 목재 냄새, 먼지 냄새, 덜 마른 페인트 냄새와 같이 우리가 흔히 전시장에서 맡게 되는 향을 복원하여 일정 시간마다 자동 분사되도록 설치된 작업이다. 관람객은 이미 전시장에 있지만, 작가에 의해 재현된 가짜 향기를 통해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인지의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본래의 용도를 상실한 의자와 차단봉, 그리고 온습도계가 올려진 로봇 청소기 작품인 <보란듯이 (for show) >(2018)의 경우, 전시장에 늘 존재하는 기성품의 오브제를 전시장에서 새로운 조형적 해석을 거쳐 본래 기능을 상실한 예술 작품으로 변모시킴으로써 전시장에 조형적 맥락과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고자 하였다. 


전시의 메인 작업이라고 할 수 있는 <모두를 위할 순 없다 (You cannot serve everyone)>(2018)는 예술 작품의 실용적 가치의 문제와 취향, 동시대 미감에 관한 고민에서 나온 작품이다. 작가의 취향과 오늘날의 유행과 스타일을 고려하여 주문, 운송을 통해 수집된 오브제로 이루어진 이 쇼룸 형식의 설치 작품은 리처드 해밀턴이 당시 작품을 통해 동시대적인 미감과 상징성을 살펴본 것처럼 작가에 의해 설정된 어떠한 상황적 연출이자 전시장이라는 특정적 상황과 공간에 대한 실험의 장으로 탈바꿈함으로써 우리가 간과하던 편견과 관성적인 시각적 익숙함에 대해 질문한다. 작가는 각각의 작품들이 가진 미술사적 맥락이 포스트 스튜디오의 과정을 거쳐 재맥락화함으로써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 되고, 이렇게 모인 오브제들은 다시금 전시장 안에서 예술 작품이 되는 순환적인 구조를 거쳐 전시장의 조형적 가치가 부여되는 지점에 주목한다. 


구수현의 이러한 시도는 기존의 맥락과 서사를 해체하고 재설정하는 과정을 통해 양가적인 측면을 모두 살피고 새로운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기존의 가치관과 관성적 시선을 거부한다. 오늘 날의 관객들은 전시장에서 우연과 부조리 그리고 익숙함을 동시에 경험하고 있다. 우리는 지난 시간을 거치며 관성적으로 의심없이 바라보는 것들을 새롭게 바라보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결국 오늘 날의 하얀 방을 그토록 색다르고, 멋지게 만드는 것에 대한 대답은 우리 각자의 몫일 것이다.